6.축제를 사는 사람들 (2)-(original)
위령 축제-김효진(젬마)수녀
유난히 시리도록 파란 오늘은 하늘이 열리는 날입니다. 모든 성인들께서 새 식구 마중 나오시는 듯 청명한 이 날 우리 신자들은 꽃과 초를 들고 미사를 봉헌하며 한 명 한 명 돌아가신 가족, 친지의 이름이 불려 지기를 귀를 세우며 기다립니다.
매년 11월 1일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하늘의 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에 이 시간에 맞추어서 죽은 영혼들이 하늘나라에 무사히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살아있는 이들이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원주민들은 정성을 다해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꼼꼼히 챙깁니다. 이들의 예식을 보면 마치 우리가 추석명절에 조상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은 기도 해주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죽은 영혼들이 하늘로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고 고된 여정이기 때문에 먼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양파에 물을 담아 준비 하고 또한 영혼의 세계에는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짐을 싣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 합니다. 물론 상징적인 말 인형이 제사상에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하늘로 가야 하는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슬프니 슬픔을 달래기 위해 달달한 사탕이 필요하다며 군데군데 사탕을 뿌립니다. 제사상 밑에 밀가루를 뿌려 두면 영혼이 왔다 간 발자국을 남긴다고 믿기 때문에 밀가루도 필수 입니다. 사탕수수를 제사상 네 귀퉁이에 매다는데 이는 영혼이 먼 길을 가는데 의지하는 지팡이를 상징합니다. 이 밖에도 평소 죽은 이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과일이나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기억하며 영혼이 천국에 가기 위한 노자로 우리 각자의 기도를 보태는 이들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위령의 날에 지내는 조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표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영혼을 위한 모든 일들을 마치고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고 제대 밑에 놓았던 꽃과 영정사진을 모시고 묘지로 향합니다. 이들의 예식을 지켜보면 죽음도 탄생처럼 똑같은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위령축제의 기간에는 우리 아이들이 제일 즐겁습니다. 제사음식이 푸짐하기 때문이지요. 제사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 과자, 과일들이 쌓여있습니다. 이것을 먹는 즐거움이 너무나 커서 우리 아이들은 대축일 미사와 제사의식의 긴 시간을 잘도 참아냅니다.
저희 산마태오 성당 공부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위령의 날 축제를 지냈습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손을 모으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이들이 하느님 품에 무사히 도착하여 행복하기를 기도 합니다.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려면 이 사람들 문화에 스며든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이들의 문화 안에 깊이 스며있는 전통방식이 때로는 낯설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가톨릭 교리와는 맞지 않는 행위로 인해 당황이 될 때도 있지만 우선 먼저 이들의 문화와 전통과 역사를 배우고 존중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일 때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도 함께 활동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입가에 웃음이 가득해서 막 구운 빵을 맛보라며 집집마다 아이들이 가져온 빵을 모으니 제각각 맛도 모양도 다른 빵 잔치가 벌어집니다. 빵 5개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순간이 현실이 되는 이러한 나눔은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렇게 빵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위령 기간 동안에는 어디에서도 빵을 구할 수 없고 모든 빵 굽는 기계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선교지에서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의탁하며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당신 자애에 희망을 두는 이들을 좋아하신다.“(시편147, 10). 불안한 마음에 인간적인 힘을 기르기 시작하면 그 힘에 의지하게 되고 모든 것이 그 힘으로 결정된다고 여기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은 하느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